우리의 악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어쩌다 프로 야구 경기를 보러 갔던 날, 그 날이 시작이었다.
자연스레 앉은 자리에 따라 엘지 트윈스를 응원하게 됐다.
성급한 판단이었다.
우리 팀은 약 10년간 줄곧 하위권에 머물며 당시 친구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았어야만 했다.
1995년생인 나로서는 우리 팀의 마지막 우승이 94년도이니 우승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은 적도 없다.
10년이 넘는 암흑기의 세월 동안 영구결번의 이병규, 박용택 선수도 우승반지 하나 없이 필드를 떠나 보내야 했다.
2020년대 들어서 부터인가 엘지가 점차 리그 내 강팀의 면모를 보이며 가을 야구를 하기 시작했다.
우승은 그저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었는데 언젠가부터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정규 시즌을 1등으로 마치며 한국시리즈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팀이 우승을 하면 어떤 기분일지 나로서도 궁금했다.
한국시리즈에는 플레이오프에서 2패 후 내리 3연승을 챙긴 KT 위즈를 상대로 만났다.
비록 1차전에서 패배했지만, 역대급 명승부로 손꼽힐만한 2,3차전을 승리로 가져오며 흐름을 잡고, 4차전은 쉽게 승리를 챙기며 우승까지 한 경기만을 남겨놓은 5차전이었다.
적절할 때 터지는 적시타와 기가 막힌 수비가 어우러지며 마지막 이닝만을 남겨둔 채 우리 마무리 고우석 선수가 등판했다.
깔끔하게 한 이닝을 막아내며 기어코 통합 우승의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휴 드디어..'였다.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래도 그라운드에서 서로 얼싸 안은 우리 선수들의 표정이 동기화 됐던 것 같다.
우리 팀의 암흑기 동안 우리 팀을 거쳐 간 여러 선수들 생각도 많이 났다.
앞서 언급한 박용택, 이병규 선수를 비롯해 봉중근, 이대형 선수 등등.
이미 은퇴한 그들이 지금은 관중의 입장에서 엘지 트윈스의 우승을 지켜봤을텐데 과연 어떤 감정일지..
당신들이 해내지 못한 업적을 달성한 후배들이 부러우면서 대견해 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같은 양의 땀방울을 흘리던 당시의 선수들에게 역시 참 고생했다고 전해주고 싶다.
엘지 트윈스 팬으로서 정말 오랜 시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 준 우리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진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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